한인배우 역사 써온 스티븐 연, 에미상도 품었다

Jan 16, 2024

다섯 살에 가족과 미국 이주…이민자의 정체성 표현

‘미나리’로 동아시아계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드라마 ‘성난 사람들'(원제 BEEF)에서 빼어난 연기력을 선보여 15일 미국 프라임타임 에미상 미니시리즈·TV영화(A Limited Or Anthology Series Or Movie)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은 스티븐 연(41·한국명 연상엽)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한국계 배우다.

스티븐 연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심리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때 처음 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이후 배우의 길을 걷는다.

그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2010∼2016년 일곱 시즌이 제작된 좀비 장르 드라마 ‘워킹데드’에 출연하면서다.

‘워킹데드’에서 스티븐 연은 영리하면서도 이타적인 글렌 리 역할을 맡았다. 특히 앳된 피자 배달부였던 글렌 리가 시즌을 거듭할수록 강인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인상적인 연기력으로 소화해 호평받았다.

그는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2018년 이창동 감독의 ‘버닝’ 등에 출연하면서 한국 팬들에게도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두 작품은 모두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도 초청됐다.

스티븐 연은 ‘옥자’에선 동물해방전선(ALF) 소속 멤버이자 주인공 주미자(안서현 분)의 말을 영어로 통역하는 역할을 맡았다. 범죄 스릴러 영화인 ‘버닝’에서는 의문스러운 남성 벤을 연기해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미나리'의 스티븐 연(맨 왼쪽)
‘미나리’의 스티븐 연(맨 왼쪽) [A24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가 배우로서 특히 명성을 얻은 작품은 한국계 리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2020)다.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국계 이민자 1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며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애쓰는 가장 제이콥 리를 연기했다.

스티븐 연은 이 작품으로 한국계 배우로서는 역대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새 역사를 썼다. 한국계는 물론 동아시아계 배우 중 이 상 후보로 오른 것은 스티븐 연이 처음이다.

이처럼 스티븐 연은 한국과 미국, 영화계와 방송계를 넘나들며 꾸준히 활동하면서 연기 영역을 착실하게 넓혀왔다.

‘옥자’나 ‘미나리’에서 볼 수 있듯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은 그가 어떤 역할을 맡는지에도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그의 연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에미상 시상식에서 모두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성난 사람들’ 역시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설정이다. 이민자 가정의 막막한 현실과 어려움을 현실감 있게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스티븐 연은 유년 시절에 한국을 떠났음에도 뛰어난 발음의 한국어를 구사한다.

연기를 처음 시작할 무렵 스티븐 연은 한국어 발음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어 학원에 다니고 한국인 친구가 발음한 한국어 대사를 녹음해 여러 번 되풀이해 들으면서 발음을 익혔다.

이런 노력 덕분에 ‘미나리’나 ‘버닝’에서 보여준 스티븐 연의 한국어 발음은 국내 팬들에게도 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장점을 살리고 있지만, 스티븐 연이 아시아계 배우가 맡는 전형적인 역할만 맡아온 것은 아니다.

과거 아시아계 미국인 캐릭터가 서구권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로 수전노 또는 엔지니어 등 전형적인 인물상이었다면 스티븐 연은 그의 출세작이라 볼 수 있는 ‘워킹 데드’에서 주체적이고 영리한 인물을 연기했다.

스티븐 연은 2018년 영화 ‘버닝’ 개봉 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동양인 배우 역할은 ‘스테레오 타입’이 있다”며 “(‘버닝’에서) 완전한 한국인을 연기하면서 제 한계를 넘어서니 마음이 넓어지고 한층 여유가 생겼다”고 털어놨다.

스티븐 연은 올해 상반기 개봉할 예정인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에도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