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버스] 엑스포 ‘국민 희망고문’…정부·언론 합작품

Nov 29, 2023

엑스포 외교 참패 이미 예견…정부, 대국민 ‘희망 고문’

판세 완전히 기울었는데도 “대역전 가능” 국민 호도

대기업 총수들 대통령 눈치보느라 ‘억지춘향’ 들러리

본보 이상연 대표가 한국 매체 뉴스버스에 기고한 칼럼을 전재합니다./편집자주

한덕수 국무총리가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 투표결과 부산이 탈락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박형준 부산시장, 오른쪽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사진=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 투표결과 부산이 탈락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박형준 부산시장, 오른쪽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사진=연합뉴스)

“엑스포 경쟁서 막판 역전 승산 있다” (한덕수 총리, 11월 20일)
“유치전 박빙…분위기 넘어왔다” (박형준 부산시장, 11월 23일)
“49대 51까지 쫓아 왔다…2차 투표서 역전” (11월23일자 조선일보)
“2030엑스포 부산으로…오늘밤 뒤집는다” (11월27일자 동아일보)
“후반전 시작, 역전골 가능하다” (11월23일자 중앙일보)

사우디 리야드가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실시된 BIE(국제박람회기구) 2030 엑스포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119표를 얻어 각각 29표와 17표를 얻은 한국 부산과 이탈리아 로마를 1차 투표에서 꺾고 승리했다.

엑스포 유치전에서 182개 BIE 회원국 가운데 122개국의 공식 지지를 이끌어 낸 사우디는 이날 투표에서 165개국만 투표에 참여했는데도 총 119표를 얻어내 전체 득표의 72%를 얻었다.

전체 국가의 3분의 2 이상을 득표해야 하는 엑스포 1차 투표에서 단번에 승부가 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1, 2위간 표차(90표)와 1위 득표율(72%)도 역대 최고치였다. 무엇보다 한국이 그동안 경쟁에 뛰어들었던 국제 행사 유치전에서 이같은 참패를 기록한 것도 초유의 일이다. ‘엑스포 외교 참패’라고 할 만하다. 지난 2010 엑스포 1차 투표에서 한국 여수는 28표를 얻어 1위 상하이(36표)에 8표만 뒤졌다.

◇ 예견된 참패…한국 정부만 ‘눈가리고 아웅’

이같은 참패는 2030 엑스포 유치전 초반부터 예견된 것이었고, 결과 역시 빗나가지 않았다. 냉정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언론이 기대감을 부풀리고 국민을 희망고문 했던 것이다.

‘오일 머니’를 앞세운 사우디는 가장 많은 68개국이 집중된 중동과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각각 14개국이 있는 카리브해와 태평양 국가를 싹쓸이하며 이미 대세를 결정지었다. 특히 아프리카와 남미에 영향력을 지닌 중국과 유럽의 맹주인 프랑스의 지지까지 이끌어내면서 1차 투표에서 승부를 끝낼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번 투표결과를 보면 사우디는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당초 지지 약속을 했던 국가를 대부분 지켰고, 지지 선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경제원조가 필요한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의 지지를 추가로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일본과 캄보디아를 비롯한 아시아 일부 국가와 EU 회원국이 아닌 동구권, EU 회원국인 네덜란드 등의 표를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리아는 EU 국가 10개국 정도와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브라질과 슬로베니아 등의 막판 지지도 확보했다.

◇ 언론의 부화뇌동(附和雷同)… 기본적인 취재도 안해

하지만 한국 정부와 부산시는 이같은 현실을 외면하고 근거없는 ‘박빙 승부’ 주장을 거듭하다 퇴로를 놓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이 엑스포 외교를 이유로 유엔총회에 참석했던 9월 이후 사우디 지지를 선언한 국가는 카리브해 14개 국가를 비롯해 파라과이, 방글라데시, 카자흐스탄 등 30개국에 달한다. 전체 득표수 119표의 25%를 이때 얻은 셈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때부터 한국 정부는 “승부의 추가 부산 쪽으로 기울고 있다”며 오도된 정보로 국민을 호도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원 활동을 펼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25일(현지시간)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공군1호기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원 활동을 펼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25일(현지시간)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공군1호기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잘못된 주장만을 그대로 받아쓴 한국 언론들도 ‘공범’이라는 지적이다. 본보는 BIE 투표 사흘전 사우디 정부의 공식 발표와 BIE 회원국들의 언론 보도를 모두 조사해 사우디 지지 국가가 122개국이라고 보도했다. 외신만 꼼꼼히 점검해도 판세를 알 수 있었을텐데, 대형 레거시 미디어들은 기본 책임을 포기하고 정부의 나팔수가 돼 희망 회로’만 돌려 국민들에게 상황을 호도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포스트, 포브스 등 미국 언론들은 이미 사우디의 엑스포 유치를 기정사실화했고,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지역 언론들은 한국이나 이탈리아의 중도 포기를 노리며 매일처럼 지지 국가들의 명단을 공개해왔다.

엑스포 민간유치위원장인 SK그룹 최태원 회장을 필두로 삼성 이재용, 현대차 정의선, LG 구광모 회장 등이 전세계를 돌며 유치 활동을 벌이고, 파리에 홍보비를 쏟아부었지만 결과적으로 막대한 기업 자금만 낭비한 셈이 됐다. 사우디 정부가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국가간 협상을 이끌어내는 냉엄한 국제정치 상황에서, 민간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3일 “정부와 여러 기업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한 결과 이제 승부를 점칠 수 없을 만큼 바짝 추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엑스포 유치위에 참여한 한 대기업의 미국 파견 주재원은 “내부적으로 이미 유치는 어려운 것으로 판단했지만 대통령과 정부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었다”며 “그 정도 정보력도 없다면 글로벌 사업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다. 최 회장의 발언이 ‘립 서비스’라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