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 변호사 등에 업은 권도형, 미국 100년형 피했다

Mar 21, 2024

뒤집기 끝 한국행 관철…작년 3월23일 검거 1년만 결정

미국보다 양형 가벼운 한국 선호한 변호인 적극 여론전

법정에 나타난 권도형
법정에 나타난 권도형 (포드고리차[몬테네그로]=연합뉴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몬테네그로 일간지 ‘비예스티’ 제공] 

가상화폐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씨가 결국 우여곡절 끝에 본인의 희망대로 한국행을 관철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결정을 두고 몬테네그로 법원이 미국에 ‘모욕을 줬다’며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형량이 미국보다 낮은 한국으로의 범죄인 인도를 선호한 권씨와 그의 변호인단의 승리라고 촌평했다.

권씨의 신병 확보를 두고 한미 간 쟁탈전이 벌어져 온 가운데 뒤집기 끝에 권씨의 한국 송환이 확정된 것은 일차적으로는 한국 정부의 발 빠른 대응 덕분이었다.

권씨가 지난해 3월 23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위조 여권이 들통나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 법무부는 다음 날인 3월 24일 영문 이메일로, 3월 26일에는 몬테네그로어 이메일로 권씨에 대해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몬테네그로에 공관이 없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몬테네그로에 대사관을 두고 있지만, 우리보다 사흘 늦은 지난해 3월 27일 몬테네그로 법무부에 공문을 보냈다. 그마저도 공문에는 권씨에 대한 임시 구금을 요청하는 내용만 담겨있었을 뿐 공식적인 범죄인 인도 요청은 없었다.

권씨의 인도국 결정에 범죄인 인도 요청 순서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면서 미국보다 사흘 앞선 한국은 미국을 따돌리고 권씨를 우리 법정에서 단죄할 수 있게 됐다.

애초 권씨의 범죄인 인도 건을 다뤄온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지난달 20일 권씨를 미국으로 인도하기로 결정했다. 고등법원은 법무부가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 정부 공문이 한국보다 하루 더 일찍 도착했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권씨 측은 즉각 항소에 나섰다. 항소법원은 권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과 달리 전자문서도 송달의 효력과 문서의 효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고등법원은 기존의 결정을 뒤집고 권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했고, 항소법원은 20일(현지시간) 고등법원의 결정을 확정했다. 권씨 측이 불과 한 달 만에 법원에서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낸 셈이다.

그동안 권씨 측은 법원에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강력 요구해왔다. 한국은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약 40년이지만,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해 10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하다.

이에 반해 몬테네그로 정부는 권씨의 미국행을 희망한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안드레이 밀로비치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 파트너”라고 밝히는 등 미국행을 원한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보다 중형이 예상되는 미국으로 인도되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던 권씨 측은 인도국을 결정하는 주체가 법무부 장관이 아닌 법원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항소법원도 권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고등법원이 인도국을 직접 결정하라고 명령했다.

권씨 측이 범죄인 인도 결정 주체를 바꾸고, 그렇게 칼자루를 쥐여준 법원이 원하는 방향과는 다른 결론을 내리자 그 결정까지 다시 뒤집은 것이다. 주요 외신들은 ‘반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권도형의 변호인인 로디치 변호사
권도형의 변호인인 로디치 변호사 (포드고리차[몬테네그로]=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변호인인 고란 로디치 변호사

권씨의 현지 법률 대리인인 고란 로디치 변호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몬테네그로에서 잘 나가는 거물급 변호사”라며 “권도형을 이렇게 헌신적으로 돕는 것을 보면 거액의 수임료를 지불한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몬테네그로는 인구 약 62만명의 소국이다. 땅덩이가 좁고 인구가 많지 않아 인맥과 네트워크가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씨가 법정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30년 경력의 로디치 변호사의 조력이 큰 힘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권씨는 가상화폐 ‘테라·루나’를 발행한 테라폼랩스 공동 창업자다. 2022년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인한 전 세계 투자자들의 피해액은 5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권씨는 이 과정에서 거액의 범죄수익을 은닉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권씨는 몬테네그로에서 검거된 그 순간부터 자신의 재력을 활용해 법적 조력을 최대한 받으며 방어권 행사에 주력했다. 지난해 5월 위조 여권 사건과 관련한 첫 재판에서는 보석을 청구하며 보석금으로 40만유로(약 5억8천만원)를 제시했다.

작년 6월 몬테네그로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선 야당 대표인 밀로코 스파이치와 2018년부터 인연을 맺었으며, ‘옥중 편지’를 통해 그에게 정치 자금을 후원했다는 내용을 폭로하기도 했다.

스파이치 대표는 총선 승리를 이끌며 총리직에 올랐고, 권씨는 말을 바꿔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권씨가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이후 줄곧 그를 대리했던 브란코 안젤리치 변호사는 돌연 사임했다. 권씨는 로디치 변호사 등을 선임하며 변호인단을 새롭게 꾸렸다.

언론을 피했던 안젤리치 변호사와는 달리 로디치 변호사는 인터뷰 등 적극적인 한국 송환 여론전에 나섰다. 또한 법원이 법률에만 의거해 인도국을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워 밀로비치 장관의 입김이 미치지 못하는데 주력했다.

결과적으로 현지에서 최대한의 법적인 조력을 받은 권씨가 미국으로 인도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자신이 원하던 대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 것이다.

다만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은 전 세계에 있는 권씨의 자산을 압류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과 이를 공유하는 데 합의할 수 있다”며 권씨가 한국으로 송환되더라도 한국 정부가 미국과 협상을 통해 미국에서 먼저 재판받도록 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권씨는 위조 여권 사건으로 선고받은 4개월의 징역형 복역이 끝나면 한국으로 송환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형기는 오는 23일 만료된다. 몬테네그로에서 붙잡힌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다.